꼭 1년 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경향신문 자매지인 위클리경향 845호(2009년 10월13일 발행) 인터뷰를 통해서다.
그때 안 교수와의 묻고 답하기에서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 혹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단어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제와 알고 보니 안 교수는 당시에도 외국에서 진행되는 그 흐름을 좇아가고 있었지만 질문자가 나라밖 세상물정을 몰라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질문이 없었으니 얘기가 나올 리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 TGIF 혹은 SNS는 우리 사회 화두가 돼 있다. TGIF가 Thank God It’s Friday(금요일이 되어 신에게 감사한다는 뜻)의 약자로 서양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에서 빌려왔다는 것은 굳이 몰라도 그만이다. 정보기술(IT) 업계는 아이폰 따라잡기에 허둥거리고 있고,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트위터 눈치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6·2 지방선거 때 트위터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정치권의 통설이 돼 있다. 1년 전만 해도 외신을 통해서나 들을 수 있던, 생경하기만 하던 단어가 이 땅에 상륙하자마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한국의 IT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대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창의력을 보지 않고 스펙을 보고 뽑는 게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김세구 선임기자


이처럼 파괴력 있는 문명을 왜 그동안 몰랐을까. IT 강국이라더니 무엇을 놓친 걸까. 원인은 무엇이고 대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그나저나 IT가 바꿔가는 세상,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1년 만에 안 교수를 다시 찾아간 이유다.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인물, 그가 바로 안 교수 아닌가.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길을 물었다.

- TGIF를 글로벌 흐름이라고 합니다. 안 교수님은 이 서비스를 얼마나 이용하는지 우선 궁금합니다.

“저는 트위터를 일찍부터 이용해 왔습니다. 한국내 순서로 따지면 아마 손가락으로 꼽힐 겁니다. 구글은 물론 아이폰, 페이스북 다 쓰고 있죠. 얼마 전부터 갤럭시S도 씁니다. 음성통화는 하지 않고 앱(애플리케이션)만 사용합니다. 말로 듣는 것 하고 직접 사용해보는 것 하고는 많이 다르니까요. 아무래도 써 봐야 이해가 빠르고 아이디어도 나오거든요.”

 “소셜 네트워크 갈수록 강화…개인이 사회구조 바꾸는 토대 될 것”

 
 하지만 트위터에서 안 교수를 찾을 수는 없다. 그의 이름이 트위터에 떠도는 순간 많은 팔로워가 붙을 테지만 그는 익명으로 트위터를 한다. 적지 않은 유명인사들이 팔로워 숫자에 신경쓰면서 은근히 숫자 늘리기 경쟁을 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 익명으로 하는 이유는 뭔가요.

“트위터는 자기가 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동안 강연 같은 것을 많이 해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요. 팔로워가 생기면 지속적으로 관리할 자신도 없고요. 제가 여러가지를 동시에 잘하기보다 하나에 집중해서 하고, 어느 정도 되면 다음 것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이에요.”

- 익명이라 해도 누군가를 팔로할 것 아닙니까.

“주로 단체를 팔로합니다. 테크크런치(미국의 IT 전문 뉴스블로그)나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를 팔로하고요, 사람으로는 토머스 프리드먼(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말콤 글래드웰(<아웃 라이어> 저자), 존 그리샴(소설가), 존 도어(벤처캐피털리스트) 같은 분을 팔로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안연구소의 김홍선 대표, 시골의사 박경철씨 등이 있습니다.”
 

내친 김에 그의 IT 사생활을 조금 더 물어보자. 얼마 전 시사저널이 조사한 ‘이 시대 영웅’에서 안 교수는 6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1~5위는 모두 작고한 사람들이다. 현존 인물로는 첫번째로 손꼽히는 영웅이 그다. 영웅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관심사 아닌가.

- 페이스북도 익명으로 하나요.

“아뇨. 그건 실명으로 합니다. 얼굴 사진을 쓰지는 않지만 캐리커처를 넣고 제 경력도 적었어요.”

- 그럼 친구하자는 요청이 막 쏟아질 텐데 어떻게 하나요. 저만 해도 모르는 사람의 친구요청을 받고 갈등을 느낀 적이 있거든요. 수락하자니 왠지 내키지 않고 거절하자니 예의가 아닌 것 같고 해서 말입니다.

“저는 페이스북을 인맥 관리용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면 친구요청을 사양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친구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 상식과는 안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모르는 사람의 친구요청이 오면 ‘예전에 저랑 만난 적이 있는지요?’ 하고 메일을 보냅니다. 혹시 내가 기억을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메일을 보내는 걸로 대개 정리되더라고요.”
 

이렇게 보면 안 교수 개인의 소셜 네트워크 생활은 제한적이다. 그는 아이폰과 갤럭시S를 동시에 사용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휴대폰은 아예 갖고 다니지 않는다. 2008년 미국에서 들어왔을 때 휴대폰 번호를 공개했더니 5분 간격으로 전화가 걸려와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던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 활동이 제한적이라고 해서 그가 소셜 네트워크의 잠재력까지 제한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소셜 네트워크가 사회를 바꿔가는 추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도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바꿔갈 것이라고 본다.
그가 트위터에서 팔로한다는 말콤 글래드웰과는 사뭇 다른 의견이다. 글래드웰은 “SNS에서 맺어주는 유대관계가 연약한 고리여서 사회변혁의 도구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안 교수의 견해는 페이스북과 구글의 관계 역전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 인터넷 영향력으로 치면 구글이 1위입니다. 검색기능 때문이죠. 하지만 근래 들어 페이스북이 사용시간 면에서 구글을 앞질렀습니다. 구글은 잠시 접속해 검색만 하고 빠져나가지만 페이스북에서는 오래 놀기 때문이죠. 조만간 사용자 수에서도 페이스북이 구글을 능가하게 될 것입니다. 페이스북이 인터넷의 최강자가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하던 일이 기정사실이 됐거든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이런 소셜 네트워크는 갈수록 강화되고 규모가 커질 것입니다. 정보가 곧 권력인 시대, 정보를 가진 개인이 사회 각 분야에 참여하면서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개인이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거죠.”

- 지금의 변화양상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테크크런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요즘이 1990년대 말 인터넷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모바일 커머스가 SNS와 결합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아이디어들이 생성되고, 또 빨리 움직이고 있어요. 눈이 돌아갈 지경입니다. 제2의 IT 혁명기라고 부를 만합니다.”

-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퇴근 후, 심지어 휴가 중에도 e메일을 체크하고 업무를 봐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이른바 모바일 스트레스라고 하는데요.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목에 줄을 매단 꼴이 됐다고 불평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스마트폰이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걸 저항하고 불평할 게 아니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TGIF는 모두 영어, 그러니까 미국의 서비스입니다. 변화의 흐름에 우리는 왜 둔감했던 건가요.

“대기업의 기득권 보호가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이 벌써 100만대쯤 팔렸다고 하잖아요. 단일기기 사용자가 단기간에 이만큼 생겼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만약 아이폰을 일찍 들여왔으면 우리 기업이 그에 맞서는 제품을 더 일찍 만들어냈을 텐데 너무 늦었어요. 기득권에 대한 과보호가 기득권 스스로에게 독이 된 거죠.”
 

아이폰의 국내 상륙을 차단한 것은 위피(WIPI)라는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규격이다. 2004년 4월부터 국내에 출시되는 모든 휴대폰에는 위피 탑재가 의무화됐다. 정부가 이동통신사의 무선인터넷 작동시스템(OS)이 저마다 다른 데서 오는 혼란과 낭비를 없애겠다며 단일표준을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은 더 이상 같은 프로그램을 이통3사의 각각 다른 플랫폼에 맞춰 세 가지 형태로 만들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OS가 다른 외국의 휴대폰은 한국 땅에 얼씬도 할 수 없게 됐다. 위피 제도를 가리켜 외부세계와 고립되게 만들어준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비판하는 배경이다. 아이폰은 지난해 5월 위피 제도가 폐지된 이후 들어왔다.
 

- 위피정책이 나왔을 때 IT업계의 평가가 긍정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규격의 표준화를 통해 프로그램 개발을 용이하게 해주는 정책이었으니까요. 이제 와서 비판해도 되는 걸까요.

“당시 위피가 좋은 솔루션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후 세계 환경이 바뀌었어요. 우리만의 표준을 고집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잖아요.”

-그 원인이 정보통신부가 없어진 때문인가요? 지난번에 교수님이 정통부 부활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만.

“꼭 정통부 부활이라기보다 컨트롤 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고요. 컨트롤 타워가 없으면 관심도, 책임도 없어집니다. 우리가 그나마 내세울 게 IT인데 이명박 정부는 IT 자체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보면 IT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이 이뤄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IT 한계론은 틀린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그가 IT업계를 장밋빛으로만 보는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IT업계의 문제를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한국은 IT 강국이 아니라 IT 소비강국일 뿐이다.” “한국에선 빌 게이츠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벤처기업 95%는 망할 것이다.” 모두 안 교수가 몇 년 전에 한 말들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설 자리를 앗아가는 불공정 산업구조여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볼 수 있는 건강한 디지털 생태계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취지다.

- 요즘 이명박 정부에서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과 공정사회를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상생과 공정사회를 아젠다로 뽑은 것은 그만큼 문제의식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칼을 뽑았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거든요. 나중에 같은 이슈를 꺼내면 사람들이 ‘옛날에도 많이 떠들더라’ 하며 시큰둥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칼을 꺼냈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결과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 미덥지 못하다는 말로 들린다.

- 상생이 안되는 구조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의 인사고과 시스템에 있습니다. 대기업의 팀장급 실무자들은 어떻게든 중소기업의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니까요. 이 인사고과 시스템이 있는 한 아무리 대통령이 재벌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협조를 당부한다 해도 실무자들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높은 사람이 한마디했다고 그대로 먹히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상생에 걸맞은 인사고과안을 마련하고 언론에서 실천 여부를 집중 조명해야 나아질 수 있습니다.”

- 현재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이지 않습니까. 거기서 그런 말씀을 안 하시나요.

“위원회는 조언을 하는 곳입니다. 결정권을 가진 곳이 아니거든요. 건의를 해도 정부에서 현실과 안 맞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 그럼 정책결정권을 가진 자리로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개각 때마다 거명되더니 지난 여름에는 총리설까지 나돌았는데요. 정치 체질이 아니라 해도 행정부에서 정책을 다루면 되지 않습니까. (실제 그는 총리설과 관련해 “제안을 받은 적도 없고 제안을 받아도 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트위터상에는 그가 총리직을 수락한 것으로 전제하고 비난하는 글들이 나돌기도 했다.)

“비즈니스 위크에 보니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폴리시(정책)를 이루기 위해 폴리틱스(정치)를 한다고요. 미국에서도 이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둘의 구분이 안된다고 봐요. 정치는 제가 알지도 못하고 잘할 수도 없습니다.”

- 그런데 어느 강연자리에서 정계 진출과 관련한 질문에 앨 고어(전 미 부통령)의 말이라며 ‘네버 세이 네버(Never say never)’라고 답하는 걸 들었습니다. 종전에는 절대 No라고 했는데 이제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바뀐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영어가 단어 몇 개로 핵심을 말하는 수가 있어 인용해본 것뿐입니다. 다만 몇 년 뒤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 앞일은 나도 모른다는 의미는 담겨 있습니다.”

의대 교수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로, 회사 CEO에서 미국 유학을 거쳐 경영학 교수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자신의 인생항로를 염두에 둔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가 언제 또 한번 변신할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채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느 자리에 있든 그가 이 시대의 희망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누구
의사에서 경영학 교수로 변신 ‘한국의 빌 게이츠’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라고 하면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기 쉽다. 물론 못한 것은 아니지만 뛰어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중간 정도, 고교 2학년 때까지 반에서 1등 한번 못했다고 한다.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 성격이어서 영화감상과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소설만 읽는다고 어머니에게 야단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한 분야에 빠져드는 몰입과 집중력만큼은 유난히 강했다. 어린 시절 새는 알을 품어 새끼를 깐다는 얘기를 듣자 메추리알을 가슴에 품고 이불 속에서 잠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바둑을 배울 때 잘 두는 사람의 지도를 받기보다 먼저 책을 50권쯤 독파해 이론을 익힌 다음 바둑알을 잡았고, 컴퓨터도 책을 사 읽고 모르는 부분은 빨간줄을 그어가며 공부한 다음 기계를 들여놓았다고 한다. 20대 나이에 의대교수가 되어서는 컴퓨터에 미쳐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출근하는 생활을 7년간 했다.
1991년 6월 군에 입대하는 날에는 새벽까지 바이러스와 씨름하다 열차에 오르는 바람에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도 못하고 나왔다는 일화도 있다.

군의관에서 제대한 뒤 그는 의사의 길을 접고 안철수연구소를 설립, 바이러스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보안업체 CEO가 됐다. 한때 미국 백신회사 맥아피가 1000만달러에 회사를 넘기라는 제의를 단호히 거절한 그는 회사 창립 10주년이 되던 2005년 홀연히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부인 김미경씨도 이 대학원 교수여서 매일 같이 출근해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일한다. 김 교수도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의사였으나 도중에 남편을 남겨두고 미국에 건너가 법학을 공부한 뒤 귀국, 특허법을 강의하고 있다. 사교육을 한번도 시킨 적이 없다는 딸이 미국에서 대학 4년에 재학 중이다.

◇ 안철수 교수 약력
 

△1962년생
△부산고 졸업
△서울대 의대 학사·석사·박사
△단국대 의대 학과장
△안철수연구소 창업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
△포스코이사회 의장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저서 : <영혼이 있는 승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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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종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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